이방인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이방인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베르 카뮈

민음사 · 2019

bgbird8901

📌 첫 번째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프랑스어 원문: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 인상 깊은 구절

p. 23

어제 일로 지쳐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나는 면도를 하면서 오늘 무얼 할지 생각해 보다 수영을 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p. 37

나는 사람은 결코 삶을 바꿀 수 없다고, 모든 삶이 어쨌든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 법이며, 따라서 여기서의 삶도 내게는 전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p. 37

나로선 내 인생을 바꿔야만 할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문제를 놓고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나는 불행한 인간이 아니었다.

p. 54

나는 예심 판사에게 그처럼 그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방향을 잘못 짚는 일이라고, 그 마지막 사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 했다.

p. 87

그 소리는 이제 나와는 영원히 무관한 세상을 향해 출발을 고하고 있었다. … 이 모든 것이 완벽히 마무리되길. 나 자신이 혼자라는 걸 보다 덜 느낄 수 있길.

📝 감상문

첫줄의 의미: 타인에게 무관심한 심지어 자신에 삶 조차 무관심한 뫼르소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1. 서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두 번 읽었다. 첫 번째 읽었을 때는 첫 문장("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이 주는 충격 때문에 그저 소시오패스 주인공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도 왜 제목이 '이방인'인지에 대한 의구점과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읽을 때는 '제목'에 집중하여 철저히 작품 자체만 바라보는 내재적 관점으로 분석해 보기로 했다. 교육과정에서 배운 역사적·작가론적 관점이나 타인들이 말하는 실존주의, 시지프 신화와의 결부 등은 잘 알지 못하기에, 오직 주인공 뫼르소의 [무기력][변화]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춰 글을 따라갔다.

2. 본론

뫼르소가 '이방인'인 이유는 철저히 내재적 관점에서 [무기력][변화]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1)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의 무기력과 상황의 불변성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사실 앞에서 무기력하다. 슬퍼하거나 부정한다고 해서 이미 일어난 사실을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장례식 직후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요일을 보내며, 결국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2) 마리를 통한 변화의 시도와 한계

뫼르소는 마리를 만나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며 무기력한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러나 마리가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아마 아닌 것 같다"*고 답하는 등, 그가 추구한 유일한 내·외적 변화인 사랑조차 뫼르소 본인에게는 불안정하고 건조할 뿐이었다.

3) 변화와 무관한 가치관과 태도

그는 사람은 결코 삶을 바꿀 수 없으며, 모든 삶은 나름의 가치가 있으므로 현재의 삶에 불만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굳이 바꿔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그의 태도는 세상의 보편적인 기준과 동떨어져 있다.

4)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온 삶의 파멸

해변에서 햇살과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아랍인을 향해 당긴 총성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스스로 행복을 느꼈던 해변의 고요를 파괴한 그 네 발의 총성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노크와 같았다.

5) 자신의 범죄와 삶으로부터의 철저한 소외

체포된 이후, 뫼르소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재판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당하며 진정한 '이방인'이 된다. 예심판사와 사법 제도는 어머니의 장례식 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점이나 신을 믿지 않는다는 태도에만 집착하며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작 본인의 목숨이 걸린 재판에서조차 자기 입으로는 단 한마디의 변호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철저한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6) 죄와 사형으로 인한 변화 동력의 상실

결국 사형을 앞두게 되면서, 마리를 통해 얻고자 했던 삶의 변화 동력마저 완벽히 잃어버리고 세상과 영원히 무관해지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3. 결론

두 번째 읽으면서 뫼르소를 단순한 사이코패스가 아닌, 한 인간의 내면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지중해 날씨처럼 건조한 삶을 살던 그는 변화시킬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무기력함 때문에 철저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고독과 소외는 소설 속 상징적인 묘사의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 극 초반: 가로등이 켜지며 밤하늘의 첫 별들이 빛을 잃음
  • 극 후반 (사형 직전): 얼굴 위로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여름의 경이로운 평화와 마음의 위안을 얻음

어머니에 대한 태도 역시 *"엄마가 죽었다. 잘 모르겠다"*라는 무심한 시작에서, 마지막에는 *"나 또한 엄마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다시 살 준비가 되었음"*을 느끼며 수용과 동질감으로 마무리된다.

요약하자면 뫼르소는 변화시킬 수 없는 현실과 주도권 없는 무기력함 때문에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직면한 마지막 순간에 내면의 변화를 겪으며 비로소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삶에서 이방인이 아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삶의 주도권이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서 비로소 존재를 깨닫는 이러한 흐름이 바로 '실존주의' 학문의 플롯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