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비틀(Maria Beetle) (이사카 고타로 장편소설)
이사카 고타로
알에이치코리아 · 2019
📌 첫 번째 문장
도쿄 역은 붐볐다. 오랜만에 그곳을 찾은 기무라 유이치는 그것이 일상적인 혼잡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 인상 깊은 구절
여섯 살 어린아이를 백화점 옥상에서 떠민 장본인이 태평하게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늘 이런 식이다. 레몬은 언제나 책임을 전가하고, 허세를 부리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인다. 밀감이 그말을 수용하거나 흘려버리지 않는 한...
불행은 감염되는 게 아닐까.
사람은, 꼭 돈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고, 다양한 욕망과 계산 하에 움직이는 거라고. 지렛대 원리와 마찬가지라서 그런 욕망의 스위치만 잘 눌러주면 중학생도 인간을 움직일수 있다.
사과의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하관계를 만들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 감상문
첫 줄의 의미 :
나는 '혼잡'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설 속 플롯은 영화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만큼이나 어지럽고 혼잡했다. 앞으로 이 혼돈의 서사에 깊이 빠져들 내 미래는 까맣게 잊은 채로 말이다. 그만큼 서사에 깊이 감탄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마지막에 단 한 번에 풀리는 구조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서사 방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원작 소설인 [마리아 비틀]을 곧바로 구매했다.
영화와 책이 얼마나 다르고 또 같을지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669페이지(알라딘 e-book 기준 309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주말을 포함해 단 5일 만에 독파했을 정도로 몰입감이 엄청났다.
영화와 소설, 무엇이 다를까?
극과 극을 달리는 결말의 분위기 가장 큰 차이는 역시 결말이다. 결말이 다르다 보니 극을 끌고 가는 서사의 톤앤매너도 조금 비틀어진다. 소설의 결말이 상대적으로 정적이고 여운이 남는다면, 영화의 결말은 훨씬 동적이고 화려하다. 이러한 차이는 책과 영화의 제목에서도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소설 [마리아 비틀] :
무당벌레(액운을 짊어지는 존재)'를 의미하며, 인물들의 내면과 철학에 집중한다.
결말은 다소 허무하면서도 묵직한 서스펜스를 남긴다.
영화 [불릿 트레인] :
고속열차'를 의미하는 제목답게, 극 중반을 지나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모든 것이 폭발하고 질주하며 극적인 액션을 선사한다. 빌런 '왕자(프린스)' 설정의 전면 수정 '왕자'는 소설과 영화를 통틀어 사건의 방화쇠를 당기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평범한 중학생의 탈을 쓰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소시오패스, 영화에서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띤다. 그런데 두 매체에서 이 캐릭터를 풀어내는 방식이 아예 다르다. 영화 속 왕자가 단순한 복수와 이익을 위해 살인을 즐긴다면, 소설 속 왕자는 "14세 미만의 어린아이는 무조건 동정받는다"는 점과 "타인의 심리를 이용하면 사람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완벽히 인지하고 이를 '연구'하는 인물이다.
소설 속 왕자의 서늘한 천재성은 아래 인용구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힘에 조종당하는 게 재밌어. 자기변호나 정당화의 덫에 걸려들고, 타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은 자연스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게 즐거워. 내가 그걸 조종할 수 있다면 최고지." *- [마리아 비틀] p.309*
"인간의 감정이란 당구 같아서 누구를 불안하게 만들거나 공포를 주거나, 아니면 화나게 만들거나 하면 특정한 인간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치켜세울 수도, 무시할 수도 있어. 아주 간단해." *- [마리아 비틀] p.309*
"사과의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하관계를 만들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 [마리아 비틀]*
소설 속 왕자는 주변 어른들에게 "왜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되는데, 평소에 살인을 하면 안 돼요?"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질문을 받는 사람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답을 내놓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직 학원 강사인 '스즈키'의 답변이 내 가치관과 가장 일치했다.
스즈키의 답변: 인간의 목숨은 부활할 수 없기에 희귀성을 가진다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다.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이는 '국가의 존엄 및 보호'와 직결된다.
만약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불안해서 경제 활동을 멈출 것이다. 전쟁 역시 결국 국가의 이익(시장의 유지)을 위해 행해지는 통제된 수단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소름이 돋았던 이유는, 과거에 내가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친구에게 *"성매매나 마약 같은 블랙 비즈니스를 국가가 금지하는 이유는, 누구나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음지로만 사람이 몰려 사회의 정상적인 경제 기반과 시스템이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소설 속 사회학적 관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영화와 소설, 무엇이 같을까?
매력적인 킬러들의 라인업 무당벌레(레이디버그), 탠저린(밀감), 레몬, 말벌, 늑대, 미네가시, 기무라, 왕자 등 기상천외한 이름을 가진 킬러들의 수와 이름이 원작과 정확히 일치한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한 공간에 모여드는 설정만으로도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간다.
신칸센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긴박감 영화의 배경인 초고속 열차(불릿 트레인)는 원작 소설 속 일본의 '신칸센'을 그대로 가져왔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거대한 밀실 속에서 킬러들이 서로를 쫓고 쫓기는 설정은 극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최고의 장치다.
소설이 영화화되면 원작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릿 트레인]과 [마리아 비틀]의 관계에서만큼은 나는 두 작품 모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소설은 인간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조종하는 소시오패스 중학생의 서늘하고 철학적인 내면을 깊이 있게 체험하는 재미가 있다. (예컨대 보행자가 빨간불에 무심코 무단횡단을 하려 할 때, 옆에서 스마트폰을 보던 타인이 동조해서 건너다 사고가 나게 만드는 '간접 살인'을 설계하는 섬뜩한 발상은 소설이기에 가능한 묘사였다.)
영화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와 복선이라는 실타래가 화려한 액션과 함께 한 번에 풀려나가는, 완벽하게 짜 맞추어진 퍼즐을 보는 진기한 쾌감을 선물한다. 서사 지향적인 관객이라면 영화를 먼저 보고, 인물들의 깊은 심리전이 궁금하다면 책으로 그 여운을 이어가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