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일신서적출판사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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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문장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밤이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있고...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 인상 깊은 구절

p. 23

"안 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p. 24

"김 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p. 24

아시겠지만 꿈이 크면 클수록 실패가 주는 절망감도 대단한 힘을 발휘하더군요.

p. 35

"정말 돈을 던졌습니까?" "예" "모두?" "예"

p. 37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 감상문

1964년 서울 인간성의 군위에 대하여

첫 줄의 의미: 1964년 서울 겨울의 상세한 묘사와 장소성 그리고 “우연을” 강조하여 이 이야기는 “우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린다. 나는 이 소설에서 무진기행처럼 철저한 대조성을 느꼈다. 소설은 나와 안 그리고 아내가 급성 뇌막염으로 사망한 사내와 함께 선술집이라는 공간부터 우연히 시작된다. 2026년에 1964년의 서울을 소설로 엿보지만, 지금은 수많은 안이 현실에 있다.

꿈틀거림 vs 삶

안의 입장에선 꿈틀거림은 파리나 음탕함과 같은 하찮은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사별한 사내의 입장에선 삶 그 자체다. 소설을 읽으며 꿈과 희망이 좌절된 인물 안이 누구보다 상실의 슬픔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사별한 아내의 남자의 상실감을 하찮게 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돈 vs 삶

돈이 많은 안은 흥미를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돈은 그저 쾌락을 위해 방탕하게 써버려야 할 어떤 것이다. 반면, 사별한 빈곤한 사내에게 돈은 사랑하는 아내의 생명과 맞바꾼 것이며 살려달라는 마지막 절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기 전 간 곳에서 한 행동이 외상값을 받는 것이었을까? 그에게 나는 살기 위해 죽고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결국 사내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다. 이 대비를 통해 1964년 인간성의 상실을 비꼬아 꼬집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떳떳한가? 자의적 해석이지만 주인공도 분명히 사내가 자살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꿈틀거리는 개미를 볼 때 자기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결론 : ‘역시’라는 단어의 무게와 인간성의 상실

다니엘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을 보면 돈이 연상되면 실험 결과가 철저히 개인화된 양상으로 나온다는 구절이 있다. 부유층 안이라는 남자는 사별한 남자가 자살하고 난 뒤 아침에 주인공에게 “역시” 죽어버렸습니다, 하고 말한다. “역시”라는 의미는 그렇게 될 것을 힘주어 암시하는 단어다. 그럼에도 남자가 같이 있어달라는 마지막 신호마저 무시하는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2026년에 사는 철저히 개인화되고 이기적인 수많은 안에게 그러지 말라고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부록 : 원미동 사람들

소설 원미동 사람들을 연상케 하는 구절 사내가 일수금을 받으러 가기 전 “꼭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하는 대목에서 원미동 사람들 연작 소설 중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가 생각났다. 플롯도 비슷하며 던지는 주제도 같은 것이 아닐까?

남겨진 의문점

소설의 마지막 장치인 “안,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 짜리죠?” / “난 어딘지 부끄러운 느낌이 드는군요” /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라는 대화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표현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무진기행>을 세 번 읽었을 때 매번 느껴지는 감정이 달랐듯, 이 소설 역시 삶의 궤적이 쌓인 뒤 다시 읽어본다면 그 숨은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