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일신서적출판사 · 1994
📌 첫 번째 문장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밤이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있고...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 인상 깊은 구절
"안 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김 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아시겠지만 꿈이 크면 클수록 실패가 주는 절망감도 대단한 힘을 발휘하더군요.
"정말 돈을 던졌습니까?" "예" "모두?" "예"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 감상문
1964년 서울 인간성의 군위에 대하여
첫 줄의 의미: 1964년 서울 겨울의 상세한 묘사와 장소성 그리고 “우연을” 강조하여 이 이야기는 “우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린다. 나는 이 소설에서 무진기행처럼 철저한 대조성을 느꼈다. 소설은 나와 안 그리고 아내가 급성 뇌막염으로 사망한 사내와 함께 선술집이라는 공간부터 우연히 시작된다. 2026년에 1964년의 서울을 소설로 엿보지만, 지금은 수많은 안이 현실에 있다.
꿈틀거림 vs 삶
안의 입장에선 꿈틀거림은 파리나 음탕함과 같은 하찮은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사별한 사내의 입장에선 삶 그 자체다. 소설을 읽으며 꿈과 희망이 좌절된 인물 안이 누구보다 상실의 슬픔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사별한 아내의 남자의 상실감을 하찮게 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돈 vs 삶
돈이 많은 안은 흥미를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돈은 그저 쾌락을 위해 방탕하게 써버려야 할 어떤 것이다. 반면, 사별한 빈곤한 사내에게 돈은 사랑하는 아내의 생명과 맞바꾼 것이며 살려달라는 마지막 절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기 전 간 곳에서 한 행동이 외상값을 받는 것이었을까? 그에게 나는 살기 위해 죽고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결국 사내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다. 이 대비를 통해 1964년 인간성의 상실을 비꼬아 꼬집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떳떳한가? 자의적 해석이지만 주인공도 분명히 사내가 자살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꿈틀거리는 개미를 볼 때 자기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결론 : ‘역시’라는 단어의 무게와 인간성의 상실
다니엘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을 보면 돈이 연상되면 실험 결과가 철저히 개인화된 양상으로 나온다는 구절이 있다. 부유층 안이라는 남자는 사별한 남자가 자살하고 난 뒤 아침에 주인공에게 “역시” 죽어버렸습니다, 하고 말한다. “역시”라는 의미는 그렇게 될 것을 힘주어 암시하는 단어다. 그럼에도 남자가 같이 있어달라는 마지막 신호마저 무시하는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2026년에 사는 철저히 개인화되고 이기적인 수많은 안에게 그러지 말라고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부록 : 원미동 사람들
소설 원미동 사람들을 연상케 하는 구절 사내가 일수금을 받으러 가기 전 “꼭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하는 대목에서 원미동 사람들 연작 소설 중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가 생각났다. 플롯도 비슷하며 던지는 주제도 같은 것이 아닐까?
남겨진 의문점
소설의 마지막 장치인 “안,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 짜리죠?” / “난 어딘지 부끄러운 느낌이 드는군요” /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라는 대화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표현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무진기행>을 세 번 읽었을 때 매번 느껴지는 감정이 달랐듯, 이 소설 역시 삶의 궤적이 쌓인 뒤 다시 읽어본다면 그 숨은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